권준호와 이야기하는
영혼을 잃지 않으면서 일하기

13호

들어가며

“연습만이 살길이다!”

정말 잘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잘하기 위해 매일매일 연습하나요? 가끔, 아주 가끔, 하지만 반드시, 치열하게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그 연습은 우리 몸에 체화되어 반자동적으로 행하는 실천이 됩니다. 그 실천은 시간과 저항을 양분 삼아 운동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지속되기 위해 다시 연습으로 되돌아갑니다. 이 순환 고리의 연쇄 작용에 몸을 맡길 때에야 비로소 영혼을 잃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때야 비로소 나를 지키는 ‘살길’이 보일 겁니다. 『안팎』 13호에서는 디자이너 권준호와 영혼을 잃지 않으면서 일상을 지키는 노력을 이야기합니다.

권준호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에서 1년간 그래픽 디자인을 강의했다. RCA 졸업 작품이자 타이포그래피 설치 작품인 「Life: 탈북 여성의 삶」이 영국 잡지 『크리에이티브 리뷰』의 ‘2011 올해의 스페셜 초이스’로 선정됐다. 2012년 영국 디자인 위크의 ‘올해의 떠오르는 스타’, 런던 사치갤러리의 ‘사치 뉴 센세이션 20인’으로 선정됐다. 런던의 반브룩스튜디오와 와이낫어소시에이츠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2013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을 운영하며 동료들과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다. AGI(국제그래픽연맹) 회원이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이퍼링크

일러두기

질문의 인용문은 모두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안그라픽스, 2023)에서 따왔다.

저희 대화에는 어떤 배경 음악이 어울릴까요?

지금 (인터뷰 동안) 틀어놓은 기타 치는 베이스 연주자 저스티스 데르(Justice Der)의 노래요. 권나무 음악도 좋아요.

저스티스 데르, 『Covers』, 2019.

“글쓰기 비전문가”이지만 책 두 권을 집필하기도 하셨죠.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은 세종도서에 선정되기도 했고요. 스스로를 작가로 소개하나요?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훨씬 더 익숙해요. 책을 내고 원고 청탁을 몇 번 받았는데 “권준호 작가님께”라고 메일이 오더라고요. 아주 낯설었는데, 사실 수락을 하나도 못 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이 익숙한 일도 아니고, 그동안 계속 글을 써오진 않았지만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이 10년의 경험이 모인 것 치고는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닌 것 같거든요.

권준호,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 안그라픽스, 2023.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을 땐 그렇게 관심이 많은 분야가 아니라도 리서치를 하면서 이 작업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낼까 고민하는 노력을 하는데, 글쓰기는 정말 관심이 있거나 ‘이런 내용을 좀 풀어보고 싶다.’라고 먼저 생각이 들 때에야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아직 프로 작가는 아닌 거죠. 프로 작가는 원고 청탁을 받으면 마치 디자이너가 일을 의뢰받아서 디자인하듯 글을 써낼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저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취미라고 하기엔 책을 내서⋯. 하지만 아직 ‘작가’는 낯설어요.

그럼 준호 님을 ‘작가’라기보다는 조금 풀어서 ‘글 쓰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글에 대한 의문이 아주 많았어요. 10년 전에 디자이너분들이 작업을 공개할 때면 그냥 이미지와 단순한 설명, 예컨대 ‘○○ 전시를 위한 포스터’ ‘오프셋인쇄’ ‘○○○○년’ 등의 정보만 나와 있고 그 작업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상의실천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작업은 어떤 식으로 기획하고 의도해서 이미지를 어떻게 도출했는지 굉장히 상세하게 적자.’라는 큰 방향성을 세웠어요.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가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맥락을 볼 수가 없으니까. 그냥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에 국한되는 듯한 느낌도 받았고요. 그런데 디자이너는 사실 이미지를 통해서 작업의 주제를 전달하는 사람인데 표현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어떤 경각심이 있었고, 그래서 작업을 하고 글을 써서 내 작업을 내가 설명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죠. 제게 글쓰기는 업무의 연장으로 이어진 일이기도 해요.

꼭 책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일 자체는 디자인과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그런 것 같아요.

디자인을 할 때 떠오르는 영감이나 마인드맵이 불확실할 때는 글을 먼저 쓰나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영국에서 유학 중인 권준호.

음,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네요. 작업에 국한한 글은 주로 작업이 끝나고 갈무리할 때 정리하는 용도로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에세이 같은 글은 달랐어요. 사실 에세이라기보다도 왜,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잖아요. 그날의 온도, 습도 이런 거요. 제가 유학을 갔던 영국은 한국과 정말 다른 환경이었어요. 빛의 느낌도 다르고 온도도 다르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특정한 정서가 있는데 한국에 돌아오면 다 까먹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그때의 단상들을 기록했어요. 학교에 대한 이야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묶어서 첫 번째 책이 나왔죠. 그땐 블로그에 글을 일기처럼 써서 누가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는데, 출판사 지콜론북에서 연락을 주셔서 아주 놀랐어요. 그렇게 됐어요.

일기를 따로 쓰나요?

요즘은 일기를 따로 쓰진 않고 그때그때 적어놓는 글감이 있어요. 예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굳이?’ ‘갑자기?’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말이 폭력적인 말일 수도 있다고 적어놓았어요. 물론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일상의실천 10주년 전시의 크레딧에 적힌 99개의 이름들.

또 디자인 크레딧에 대한 단상도 적어두었는데, 전시나 행사 디자인이 공개되면 누가 디자인했는지 표기를 안 해주더라고요. 저희는 인스타그램이나 웹사이트에 누가 작업했는지 다 써놓습니다. 하나 감동받았던 게, 이케아에 가면 디자이너의 이름이 다 표기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들은 아직 글로 만들어지지 않은 단상들이라 일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인 것 같아요.

그럼 디자인 아이디에이션을 하거나 마인드맵을 그릴 때는 어떤 도구를 쓰나요?

이미지들을 콜라주하는 개념으로 많이 작업해요. 미술 전시 같은 경우엔 큐레이터분이 전시의 개념과 상세한 디테일을 텍스트로 풀어서 주시기 때문에 제가 그것을 글로 다시 풀 필요는 없는데, 그 외 작업들은 사실 충분한 정보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리서치를 깊이 하고, 그렇게 해서 나오는 파편적인 정보들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글쓰기는 끼워 맞추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한다는 개념으로 할 때가 많은 반면에 디자인 작업은 널브러진 정보들을 모아서 연결 고리를 만드는,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생각과 경험을 글로 남기자는 결심”이 여러 해 동안 쌓이고 쌓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어요. 생각과 경험을 디자인으로 남기기도 하나요?

많이 고민해 봤는데 생각보다 그러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가 작업할 때 잡는 중요한 기준이 있어요.

나의 성향과 맞고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작업인가?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인가?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굳이 자아를 실현하거나 생각과 감정을 시각화할 작업이 따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생업 안에서 그런 것들이 해소되는 거죠. 아까 말한 것처럼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작업에 들이미는 건 아니고, 기다리다 보면 이 표현과 딱 맞는 주제가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 착 붙여서 작업하기도 하죠.

이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사회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가서 재미없는 디자인을 하고 퇴근 후에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 말이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일이고 정말 쉽지 않잖아요.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인데 물론 쉽지는 않겠죠. 그래도 노력을 해봐야지, 그냥 너무 쉽게 사회와 타협해서 직장 생활은 직장 생활대로 하면서 재미없는 디자인만 만들다가 ‘퇴근하면 하고 싶은 거 해야지.’ 하는 삶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저희는 그래도 꽤 일치하는 것 같아요.

“디자인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체화되지 않은 정보의 구조를 분석하고 엮어내어 시각적인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면 글쓰기는 ‘시각적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구체화되지 않은 정보의 구조를 분석하고 엮어내어 문자의 형태로 설명해 내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요. 준호 님이 디자인을 할 때와 글을 쓸 때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저는 둘이 비슷한 것 같아요. 글을 쓸 때도 이미지를 만들 때도 주제를 전달하는 정확한 표현 방식을 찾으면서 진행해요. 그러니까 이미지를 만들 때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색이나 표현이 존재하지만,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에 제 취향을 갖다 끼우는 게 아니라 그 주제에 걸맞은 표현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해요. 물론 저도 관성에 따라서 어쩌다 오렌지색을 쓰려고 하면 과연 여기에 맞는 색인가 아주 많이 고민합니다. 글쓰기도 비슷한 것 같아요. 기능적인 글을 쓰는 것이 제게는 중요한데, 그럴 때면 자칫 여러 표현을 끼워 넣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걷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이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과연 이런 미사여구가 필요한가 질문했죠.

시각물은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구체적인 형상이 있어요. 하지만 (특히 그래픽 디자인에 한정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구체적인 형상은 묘사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야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약간 모순인 것 같은데, 반대로 글은 사람들이 읽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있으니까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게 훨씬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미지를 만들 때는 그 메시지의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좀 더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이 큰데, 글을 쓸 때는 오해가 생기지 않고 메시지가 곡해되지 않게 단어를 가다듬고 표현 방식을 정제했던 거죠. 굳이 작업으로 따지면 글쓰기는 타이포그래피를 할 때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자신의 글쓰기를 “겸연쩍”다고 표현했는데, 이런 글쓰기에서 준호 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저는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이 에세이로 분류될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는데, 어쨌든 학술 서적은 아니기에 서점에 가서 에세이 매대를 둘러봤어요. 매대에는 감상적인 내용의 책이 많더라고요. 개인의 감정을 나열하거나 풀어내면서 위로하는 글들이었어요. 제 책은 그보다는 좀 더 기능적이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짧은 글들이지만 나름대로 주제를 심어놓으려 했어요. 클라이언트와 어떤 논쟁을 벌인 이야기더라도 그냥 ‘내가 화났다.’가 아니라, 그 에피소드를 통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디자이너들의 입장은 이러하다는 식의 기능적인 이야기들을 심으려 했죠. 결국 저는 글을 쓰는 데 주제 전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준호 님은 어딘지 있는 그대로 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영국에 있을 때 떠올린 단상들을 포착해 내려 한 점도 그렇고요.

네. 책의 시작에 있는 「견적 비교를 위한 견적서」도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디자이너들에게 견적서만 요청하지 마라. 작업의 맥락이나 기획이 디자이너와 잘 맞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것이니까요. 그때 느낀 어이없음, 황당함도 당연히 글에 들어가 있겠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제가 한 가지 우려했던 건, 마치 교훈처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가르치려는 식으로 읽히는 일이었어요. 그러지 않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그 중간 지점을 찾으려 했죠.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분명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지 드러나도록 균형을 잡으려 했어요. 잘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퇴고를 여러 번 거치나요?

그렇죠. 특히 오래전에 쓴 글들을 다시 옮겨 올 때는 거의 다시 쓴 것 같아요. 특히 클라이언트와 일하면서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한 글은 감정이 지나치게 들어가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과정이 좀 부당할 수 있고 이렇게 개선하면 좋겠다는 내용인데 너무 감정적이고 격한 어조라면 전달하려는 메시지보다는 그냥 ‘이 사람 빡쳤네?’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어서 이런 점을 경계했어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책을 봤어요. 글을 읽으며 현실과 자주 타협하는 제 자신을 반성했죠. 준호 님처럼 강단 있게 말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스스로 자부심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와 주고받은 메일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한 한편, 글에서 느껴지는 분노에 놀라기도 했어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참을 때가 많거든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면⋯.’이라는 궁금증도 들고요.

(웃음) 그런가요? 많이 정제한다고 했는데. 근데 그런 얘기는 들었어요. 옛날에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제 작업과 글만 보고서는 제가 생활 한복 입고 다닐 줄 알았다고.

(웃음) 저도 인터넷에서 준호 님의 사진들을 보았을 땐 온화하다고 느꼈는데 글에서는 또 다른 분노가⋯.

저는 사람을 대할 때 온화하고 다정한 태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대하면 클라이언트도 그렇고, ‘이 사람 좀 만만하네?’ 하면서 태도가 바뀌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죠. 미팅 할 때도 금요일에 자료를 보내고서 월요일에 시안 달라는 그런 사람들이 꼭 있잖아요. 저는 웃으면서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인데, 그런 경우는 절대 넘어가지 않아요.

제가 들은 피드백 중에 「어느 건축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다이어그램은 ‘시각적으로 매우 못생긴’ 다이어그램입니다.”라고 말한 게 충격적이라고 하신 분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클라이언트들은 그런 얘기를 심심찮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동등한 관계라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내용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하시니 아직은 이 관계가 동등하지 않구나 느꼈어요.

이 책을 10년에 걸쳐서 쓰긴 했지만 한 권의 책으로 묶을 때는 읽을 사람을 상상하면서 정돈했겠지요. 그때 떠올린 독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방금 디자이너님이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한 상황에서 “그래도 된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분들이요. 저희 명함에도 근무 시간이 크게 쓰여 있어요.

일상의실천 근무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다.

이거, 진짜인가요?

지키려고 정말 노력해요. 금요일 이후에는 일 안 하고요. 근데 많은 디자이너가 이렇게 하기를 좀 무서워하더라고요. 저녁 7시 지나서 연락 안 받고 주말에도 연락 안 받고 이러면 일 끊기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디자이너님이 말씀한 것처럼 일상의실천이라는 팀이 10년 동안 꾸준히 해와서 현재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랐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많고요. 그런데 저희는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어요. 왜냐하면 전 일을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저희 선배분들이나 업계에서 만난 디자이너분들을 보면 디자이너의 수명이 엄청 짧은데, 수명이 짧은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앞서 말한 것도 포함되는 거죠.

근무 시간이 너무 초과되거나 괴롭힘 당하거나 자기와 맞지 않는 일을 해서 자아분열이 오는 경험을 10년, 20년 하다 보면 금방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즐거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서 애초에 삶의 목표를 조금은 다르게 설정했던 것 같아요. 하다 보니까 지금은 번듯한 집에 살고 있고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일단 ‘중산층의 삶을 포기하자.’ 이게 저희 셋 나름의 어떤 방향성이라고 하면 좀 웃긴데, 안정적인 삶을 꿈꾸면 사실 그럴 수가 없잖아요. 아파트, 수입차 이런 걸 생각하면 당장 무슨 몇 억짜리 프로젝트가 나와 안 맞고 내가 갉아 먹힐 것 같더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안 한 거죠. 부당한 일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요.

책에 안 쓴 웃긴 이야기들도 많았어요. 어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계약서를 보내 왔는데 너무 부당한 계약서인 거예요. 클라이언트가 요청하면 언제든 시안을 다시 해야 하고, 언제든 일방적으로 일을 종료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빨간 펜으로 다 수정해서 보내줬어요.

또 웃으면서 말씀하셨나요?

네.(웃음) 하지만 이렇게 부당한 건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결국 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의 계약은 파기됐어요.

(모두 웃음)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무조건적으로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부 다 맞춰주면서 자기가 죽을 것 같은데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은 꼭 작업에만 국한한 태도라기보단 준호 님의 가치관이고 성향인 것 같아요. 어릴 땐 어땠나요?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는 별일 없었던 것 같은데 들어간 대학교가 정말 꼴통이었어요. 군대 갔다 온 선배들이 후배들 집합시켜서 기합 주고 ‘빠따(몽둥이)’ 때리고 인사 안 했다고 불러서 혼내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땐 그저 선배가 꼰대라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단순히 선배 개인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당시 교수들이 애들 군기 좀 잡으라며 선배들을 시키면 그들은 행동대장처럼 나섰고, 그렇게 예쁨 받아서 취업하는 데 도움받는⋯. 정말 카르텔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게 있더라고요.

대학을 졸업할 땐 졸업 전시 책자를 디자인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약간은 이런 성향이 된 것 같아요. 그냥 포트폴리오만 넣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해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학생들에게 “너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니?”라며 질문하고 다녔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학교의 문제점들을 고발하는 듯한 책이 된 거예요. 그래서 한바탕 난리가 났고 교수들이 책을 수거해 갔죠. 그런데 그때 학교에 희망이 없다며 무심하게 학교를 다니던 애들도 ‘이게 문제가 있는 거고, 이걸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구나.’라는 인식이 조금 생겼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부당함이 점차 없어지기도 했고요. 그때 디자인으로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 참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의 글이 있나요?

몇 가지가 있어요. 궁금하기보다는 아주 의외인 말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혼나는 느낌이 난대요.

저도 그랬어요. 편하게 누워서 읽다가 자세를 바로잡고 앉게 되는 때가 많더라고요.

그런 내용이 은근히 많습니다. 정신 차리고 싶을 때 읽는 글이라는 이런 내용들. 그리고 위로가 된다는 얘기도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 저나 저희 작업실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 중에는 처음부터 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인턴 때 혼난 이야기도 있다 보니까 현재 느끼시는 자기 자신의 부족함에 위로가 되었나 봐요.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글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글이 술술 읽힌다.”였어요. 처음에는 내가 글을 가볍게 썼다는 말인가 싶다가, 보니까 아주 칭찬인 것 같더라고요. 저도 책을 읽을 때 글이 중간에 턱턱 막히면 집중하기가 힘들고요. 요즘에도 저는 한 지면에 어느 정도의 원고가 적정한 양일까 아주 많이 고민하면서 디자인을 하는데,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의 경우는 이 정도가 적정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저도 ‘현대병’이 생겨서 그런지, 이보다 글이 더 많아지고 빽빽해지면 집중도가 확 떨어지더라고요. 옛날 책들은 글자가 훨씬 많이 들어갔는데도요. 그래서 글자 크기, 행간, 자간 등을 많이 고민하며 작업했는데,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독자분들이 그냥 체감상 글이 잘 읽힌다고 한 데는 문장을 길게 늘어뜨려 쓰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디자인의 역할도 있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 딴에는 정제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진보적인 시각이 묻어나요. 그런데 자신이 국민의힘 지지자임을 밝힌 한 독자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반대해 있지만 이 디자이너가 이렇게 성장해 오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작업에 대한 태도나 이런 건 공감이 아주 많이 간다.”라고 해주셨어요. 보통 정치적 시각이 다르면 일단 모르겠고 그냥 다 안 좋게 보곤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블로그에 리뷰가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맞아요. 꼭 디자인에 관계되지 않은 분들도 많이 읽으셨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어떠세요? 글쓰기 자체는 어딘지 굉장히 개인적이고 어찌 보면 고립된 행위잖아요. 그런데 책이 사람들에 가닿고, 그들이 책에 대해 글을 쓰고, 그 글이 다시 준호 님께 가닿을 땐 마음이 참 콩닥거리면서도 설렐 것 같아요.

너무 그렇죠. 참 신기한 경험이고요. 사실 디자이너는 자기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냥 인스타그램 좋아요 수 정도? 게시물에 달린 댓글도 이모지가 많지, 작업에 대한 비평 같은 건 보기가 정말 어려워요. 책은 그래도 서평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게 하나의 문화처럼 작동하는데 디자인은 그런 문화가 잘 없어서 항상 아쉬웠어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낸 글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만큼씩이나 또 다른 글을 써주니까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죠. 그런데 책에 별점을 매기기도 하잖아요. 어제는 본인 블로그에 제 책에 대해서 별점 4개를 남긴 분을 발견했어요.

일상의실천 인스타그램 피드. 좋아요 수 2000개가 넘는 게시물에도 댓글은 10개 내외고, 대부분 이모지다.

어떤 내용이었어요?

리뷰 자체는 좋고 자유롭다는 내용이었는데 왜 별점이 4개인지는 말이 없었어요. 댓글로 물어볼까 하다가 이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익명의 댓글로 한번?

아, 너무 없어 보이는데요.

(모두 웃음)

일상의실천은 포스터, 무빙 포스터, 웹사이트, 아이덴티티, 표지, 전시 등 여러 매체의 작업을 하지만 준호 님은 책이라는 매체를 선택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어요.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고요. 그런 책이 준호 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한 지면의 레이아웃은 제게 하나의 훈련의 장이었어요. 웹 디자인과 편집 디자인을 할 때 피그마와 인디자인을 사용하는데, 이때 지면을 굉장히 촘촘하게 나누면서 그리드를 짜잖아요. 책을 다루면서 지면을 디자인하는 방법을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웹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지만 지면을 다루며 익힌 감으로 웹 작업을 많이 해요. 물론 웹에서만 통용되는 규칙들이 있죠. 하지만 지면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균형감과 조형감은 책으로 많이 공부했어요.

졸업 전시 때 책자 대신 대자보를 붙여서 우리 학교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알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책은 서사를 담아내고 이야기를 점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매체더라고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기도 하고 치솟아 올랐다가 내려가기도 하는 그런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모션 포스터 작업을 시작한 계기도 비슷합니다. 책은 서사가 있고 기승전결이 있는데 정지된 포스터에는 그것을 담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모션을 집어 넣으면 비록 30초밖에 안 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내서 훨씬 더 풍성하게 주제를 전달할 수 있겠더라고요.

준호 님의 다음 책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지금은 ‘또 책을 내야겠다.’ 하고 글을 쓰면 작위적으로 쓰일 것 같아요. 메모장에 틈틈이 글감을 적어두긴 하는데, 그런 게 쌓이면 언젠가 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때를 정하고 글을 쓰면 아무래도 억지로 쓴 것처럼 될까 봐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가장 좋아하는 책이 있나요?

(왼)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례출판, 2018.
(오른) 김소연, 『마음사전』, 마음산책, 2008.

책을 쓰는 동안은 이 두 권을 많이 읽었어요. 어떤 표현을 할 때 정확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어휘력이 받쳐주지 않아서 그렇게 못 하곤 하는데, 이분들은 모호한 감정을 정확한 글로 딱 집어내시더라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걸 정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맞아요. ‘가장’ 좋아한다는 말은 선뜻, 쉬이 하기 어렵죠.

충격을 받은 책들은 있어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Haben oder Sein)』를 어릴 때 읽었는데, 예컨대 어떤 사람은 들판을 거닐며 피어 있는 꽃을 보고 풍경을 즐기는 반면에 누구는 그 꽃을 따서 집에 가져가 꽃병에 꽂아두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개념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였는데, 그때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생각하게 됐어요.

대학생 때는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세미콜론, 2007)를 읽고 디자이너로서 큰 영향을 받았어요. 특히 책 제목의 임팩트가 아주 강했어요. 지금까지도 많은 활동가분과 비영리단체, 노조 단체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의뢰가 들어왔을 때 긴가민가하는 작업들이 있어요. 이 일을 내가 해도 되나 싶은 작업들이면 항상 고민해요. 내가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활동해 왔는데 이 작업이 그것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게 아닐까? 만약 위배한다면 나도 모르게 나를(내 영혼을) 갉아먹진 않을까? 그땐 함께 작업한 분들께 상담을 받아요. “저 이 일을 해도 될까요?” 그러면 그분들은 그 기업 혹은 단체에 대해서 줄줄 읊어주시고 저는 그렇구나 합니다. 중심을 잡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하는 거죠.

일상의실천은 사회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요즘 준호 님의 마음에 틈입해서 떠나지 못한 사회문제는 무엇인가요?

요즘 관심을 갖는 이슈는 이태원 참사입니다. 그날의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이태원 길에 게시판 같은 것이 섰어요. 그것 관련해서 활동하는 분이 연락해 주셔서 작업을 같이 하고, 이후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많은 고민을 털어놓으셨어요. 저희는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작업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전 국민이 다 같이 슬퍼했고 추모 활동도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이태원 참사는 그런 게 없거든요. 사람들이 비극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전 국민적으로 슬퍼하지는 않더라고요. 저희도 체감하긴 했는데 활동가분들이 느끼기엔 그 온도가 세월호 참사 때와는 너무나 다르대요.

일상의실천,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4.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한 일상의실천의 작업.

이 온도 차이가 어디서 오는가 하면, 누구나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말로는 잘 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는 무고한 아이들이 바다로 나갔다가 어른들의 책임, 권력 때문에 희생됐고 그래서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이 있는 반면에 이태원 참사는 자기들이 좋아서 놀러 나갔다가, 사람들이 다 위험하다고 하는데도 굳이 굳이 자기 의지로 갔다가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슬퍼하지 않는대요. 그리고 이태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위 말하는 힙스터나 MZ 세대를 향한 약간의 불편한 시선도 엮여서, 이태원 참사는 안쓰럽고 슬픈 일이지만 굳이 나가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대요. 그래서 1년밖에 안 지났는데도 너무 조용하대요.

생각이 참 많아지네요.

연민이냐 동정이냐 애도냐에 따라 추모의 정도가 다르고 죽음에도 계급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이태원 참사는 특히 책임의 소재를 묻기가 어려운 사건이고 특별법 제정이 가장 큰 이슈인데, 특별법을 제정해서 뭐할 거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명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일어난 비극은 맞기에 운동을 펼칠 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앞서 말한 게시판 작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 시각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너무 깊게 고민하다가 결국엔 클라이언트분들이 준 텍스트를 잘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일상의실천이 2023년부터 두세 개 자체 프로젝트들을 전시한 『운동의 방식』의 영어는 Ways of Practice입니다. 여기서 운동이 Practice로 번역됐는데, 일상의실천의 ‘실천’도 Practice죠. 심지어 웹사이트에 Practice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마련돼 있는 걸 보니 이건 우연이 아니겠다 싶었어요. 적어도 일상의실천에게 운동은 실천이고, 실천은 운동인 것 같았죠.

일상의실천(Everyday Practice) 웹사이트의 Practice 카테고리에 아카이빙된 『운동의 방식(Ways of Practice)』.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사실 Everyday Practice(일상의실천)는 굉장히 건조한 영어거든요. 매일매일 연습하고 훈련한다는 뜻인데 그게 저희에겐 아주 중요했어요. 가끔 처음 시작했던 2013년 작업을 꺼내 보면 이걸 돈 받고 했다니, 사기꾼이다 싶을 정도로 엉망이에요. 그래도 매일매일 하다 보면 조금씩 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운동의 방식』 전시 서문에서 제가 썼지만 잘 썼다고 생각하는 문장이 있어요.

운동은 적극적인 참여인 동시에 지속적인 행위를 포괄한다. 때문에 실천되지 않는 운동은 하나의 방식을 형성할 수 없다.

이것이 저희에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운동이 지속되지 않고 나아가 실천이 되지 않으면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없는 순환 고리인 거죠. 실천이 쌓이면 운동이 되고, 운동이 되려면 실천이 지속돼야 하는 고리. 결국 운동과 실천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라서 전시 제목에서 이 둘을 등치로 표현했어요.

처음에 Everyday Practice를 “매일매일 연습하고 훈련한다.”라는 의미로 썼을 때 Practice가 언젠가는 ‘운동’으로도 쓰일 것을 아셨나요?

이름을 지을 때는 몰랐어요. 근데 ‘일상의운동’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 않나요?

‘일상의실천’이 입에 더 잘 붙어요. 운동이라는 의미는 말씀했듯이 실천이 쌓여서 운동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운동이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방식을 가리켰거든요. 소위 말하는 운동권에 있는 사람들이 쓰는 시각 언어가 있잖아요. 대자보에 붓글씨로 쓰고 막걸리 마시고⋯. 왠지 그쪽 사람들은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서체도 쓰는 전용 서체가 있어요. 노조분들이 어떤 서체를 꼭 써달라고 전해주시는데 그 이름이 ‘천지개벽체’예요. 노조위원장 홍보 포스터를 만든 적이 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이분들 앞에 카메라를 들이밀면 취하는 기본적인 자세(힘 있게 주먹을 쥐고 눈높이까지 올려 드는 자세)가 있어요. 아무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분들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정형화된 시각 언어가 있는 거죠. 아까 생활 한복 입고 다닐 것 같다는 것도 특정한 시각 언어고요.

저희는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디자인이 그런 전형성을 벗어나면서도 원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운동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컨대 구호단체가 기아 상태에 있는 아이의 이미지를 등장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방식인데, 그런 것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다시 살아났지만요. 처음엔 월드비전 같은 곳과 함께 작업하면서 결국은 그 이미지를 설득해서 없앴어요. 그렇게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었더니 후원금이 떨어진대요. 불쌍한 애가 나와야 후원금이 올라가는 거죠.

그러니까 조금 전 말한 참사와 마찬가지로 ‘사실은 동정심을 느껴야 사람들이 움직이는 건가?’라는 회의가 들었어요. 『운동의 방식』 전시를 열 때도 그랬고, 지금도 어떤 특정 단체들의 전형성을 벗어나도 시각적인 임팩트를 주고 파급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노조분들의 머리띠를 빼는 것도 진짜 오래 설득했는데 조끼는 이분들의 생명과도 같은 엄청난 상징이라서 절대 벗을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쉽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지콜론북, 2013)와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에 출연하는 준호 님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마음이 그때도 지금도 선명한 것 같은데, 첫 책에서 준호 님이 받은 질문을 다시 여쭐게요. “평생에 걸쳐서 저항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책에 진보적인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꼭 진보와 보수를 논하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뜻한 것만은 아니에요. 진보는 머무르거나 고여 있지 않으려는 의지 같은 건데, 20대에는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당연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 했고 진보적인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았죠. 그때 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넘어가는 나이가 사회를 보는 시각이 바뀌는 시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역시 다른 고민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서 정부가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을 펼치면 예전엔 “저거 부자만을 위한 정책이다.”라고 비판했을 텐데, 지금은 제가 어떤 부동산이 있다면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 표를 찍을 것인가 고민하는 시점이 온 거죠.

그래서 ‘저항하고 싶은 가치’보다 ‘직업적인 가치관으로서의 진보적인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금방 자기 복제를 하게 되더라고요. 창작자가 어떤 변화도 추구하지 않고 머무르기만 하면 예전에 관습적으로 사용했던 표현들을 다시금 쓰면서 점점 고여 있게 돼요. 그런 상태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보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제 삶의 여러 부분과 맞물리는 것 같아요. ‘저항’이라는 말은 거창한 표현인 것 같긴 한데, 일상에서 내가 지키려는 것들을 지키는 것이 사실 제일 어렵더라고요.

그럼 다른 말로는 “일상에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디자이너들이 일찍이 현업을 떠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엔 그런 것도 있대요. 자기가 가르친 제자라든지 자기 회사에서 인턴을 지낸 친구라든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경쟁자로 만나기도 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그것 자체에 대해서 자존심이 상하고 인정할 수 없는 분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가르친 학생과 밥그릇 다툼을 해야 하냐면서요. 저는 이것이 그렇게 멋진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느껴요. 10대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내는 그래픽을 보면 화려하고 멋있는데, 그것을 그저 세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제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보려 해요. 예를 들어 타이포그래피를 할 땐 자주 쓰는 서체만 쓰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해요. 이런 태도를 유지하고 싶은데, 어렵기도 해요.

2019년 타이포잔치에 출품한 「감정 조명 기구」가 여러 전문가와 협업하여 완성했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하셨는데, 당시 협업의 과정이 궁금해요.

협업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과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다르기에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아름다운 관계라고 생각해요. ‘일단 가져와 봐.’ 식으로 저희에게 일을 의뢰해서 보여주면 다시 수정을 요청하는 과정은 전혀 협업이 아닙니다. 명령하고 수행하는 관계죠. 모션 작업, 3D 작업 등 저희가 일을 의뢰할 때가 있는데 그땐 절대 그런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해요.

저희가 하려던 작업은 아주 고난이도 작업이었는데 이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과정은 정말 아날로그적이었어요. 인터넷이 발달해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런 작업에 어떤 명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을지로에 전기 기술자분들을 무작정 찾아가서 스케치를 보여주면서 이런 걸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죠. 그러자 누구 찾아가 보라고 해서 찾아가면 그다음에는 또 누구를 찾아가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누구를 찾아가고⋯. 이렇게 계속 소개받으며 찾고 찾다가 결국에는 부산에 있는 분한테까지 연락이 가서 그분을 서울로 모셨어요.

부산에서 온 전문가.

정말요?

저희도 그런 걸 처음 해봤어요. 전기에 대한 전문 기술을 갖춘 분이었지만 그분도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는데 그래도 해보겠다고 하셨죠. 이 작업뿐 아니라 다른 여러 작업을 할 때도 익숙지 않은 곳을 많이 찾아갔어요. 가야에 있는 공구 상가에 가기도 했죠.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작업할 땐 상하수도관을 연결해서 글자 탑을 만들어야 했는데 수관을 커팅해서 연결하는 작업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또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했어요. 그런 과정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일상의실천 웹사이트에 아카이빙된 작업 게시물엔 크레딧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어요. 거기에 이름이 없는 구성원들과도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나요?

그렇죠. 크레딧에 적힌 이름들은 참여한 분들이고, 써 있지 않더라도 특히 저희 셋 친구들(권준호, 김경철, 김어진)은 많이 이야기합니다. 회사이긴 하지만 저희는 쭉 대학 친구들이다 보니 “회의를 합시다.”라며 회의하진 않고 지나가면서 “이거 한번 볼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요.

의뢰가 들어오는 작업의 역할 분배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하고 싶은가?’예요. 그래서 직원분들에게도 “이거 하세요.”라고 하지 않고 받은 의뢰 메일 중 당기는 것을 물어봐요. 일차적으로는 그렇게 분배되는데 저희 셋이서 의뢰처가 문제 있는 곳은 아닌지, 일상의실천과 맞는 일인지 검토해요. 하지만 어떤 작업과 어떤 디자이너의 성향이 어울리겠다고 분석하진 않아요. 그러면 그런 표현을 잘하는 사람만 계속 그 일을 하게 되거든요. 새로운 도전이라도 하고 싶으면 해보는 거죠.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 겹칠 때는요?

그럼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게임을 해요. 그래픽 디자인 나름의 장점인 것 같은데,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요. 3-4개월, 길어도 6개월을 넘기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이 작업 하나가 내 커리어의 마지막은 아니기 때문에 이 작업 안 하면 막 죽을 것 같고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구성원 사이에서 반드시 지키는 규칙이 있나요?

제안은 하되 강요는 하지 말자. 그런데 작업에 개인의 애정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피드백을 주고받거나 제안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곳들도 있더라고요. 그것은 팀으로서 시너지를 내기에 좋지 않은 구조인 것 같아요. 10년 동안 일하다 보니 0.5포인트, 몇 밀리미터 이런 걸로 싸우다가 찢어진 팀도 정말 많이 봤거든요.

“이러면 어때?”라고 제안하긴 하지만 상대방이 “아, 이거 해봤는데 나는 아닌 것 같아.”라고 하면 저도 더 이상 무언가를 제안하기보다 “그렇구나.” 합니다. 그 사람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제한은 월권인 것 같아요. 만약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런 방식으로도 시도해 보는 거고요. 그 사이의 중간 지점을 잘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 “저희 셋 친구들”이라고 표현하셨어요. 그런 친구들과 10년 이상 함께 일한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너무 복합적인 감정이라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제게 가장 큰 경험은 이런 거예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 많이들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10년 이상을 같이하니까 자기 성향보다 중요한 관계가 있으면 죽어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성향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많이 바뀌었고 친구들도 많이 바뀌었어요. 10년 동안 당연히 저희도 헤어질 뻔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관계가 내 인생, 내 커리어, 내 모든 것에 너무 중요한 관계일 땐 사람이 바뀌더라고요.

친구와 일하면 안 된다, 가족과 일하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가 참 많잖아요. 잘 지낼 관계도 같이 일하면 깨지는 경우도 정말 많고요. 그래서 저희가 싸울 때나 갈라질 위험이 있을 땐 나름의 정면 돌파를 한 것 같아요.

“우리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서로에게 쌓인 것도 다 풀고, 글로 적기도 하고, 절대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보면 그간 쌓인 오해가 정말 많더라고요. 특히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들.

관계가 오래되고 깊어질수록 표현하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영국에서 사람들은 감정 표현을 아주 많이 했어요. 그냥 옷 입고 온 건데도 “Gorgeous!” “Lovely!” 이렇게 많이 칭찬하는데 한국은 잘 그렇지 않잖아요. 특히 남자들끼리는 진짜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무관심으로 보일 수 있어요. 특히 작업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전에 친구가 주도적으로 디자인을 맡은 전시가 오픈했을 땐 가서 그냥 뭐 “잘했네.” “ 나쁘지 않네.” 이러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친구가 애정을 가지고 디자인한 전시라면 아무리 바빠도 제주도건 부산이건 서울이건 셋이 같이 가서 말하죠. “야, 너 진짜 멋있다.”

친구가 작업하면서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노력했나 같이 살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저희도 그냥 틱틱대고 밥 먹을 때도 말 안 하는 그런 전형적인 남자애들로 지냈어요. 그런데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기 위함을 넘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어디에 애정을 갖고 일했나를 아주 유심히 봐야 되더라고요. 경철이는 웹을 주로 작업하는데, 그전에는 오픈한 웹사이트를 핸드폰으로 쓱쓱 보고 “잘했네.” 이랬지만 지금은 작업실에 빔 프로젝터로 띄워서 설명해 주면 같이 이야기도 나누면서 서로의 작업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영국에 있을 때는 자주 표현했나요?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다들 그러니까 저 혼자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영국인들 중에 심한 애들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그냥 자동으로 나오는 건지,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세 분을 포함한 일상의실천이 때로는 우정을 때로는 영감을 때로는 비평을 나누면서 함께 성장하는, 회사라기보다도 하나의 공동체 같아요. 이런 일상의실천은 준호 님에게 어떤 공동체인지 궁금합니다.

그대로입니다. 덧붙일 게 없어요.

준호 님은 팬톤 오렌지 021C의 매력에 푹 빠진 나머지 오렌지색 옷, 가방, 소품에서 나아가 오렌지색 자동차를 구입하셨는데, 혹시 지금도 몰고 계신가요?

네, 그럼요. 주차장에 있습니다.

오늘 사실 오렌지색 옷을 입으셨을 줄 알았는데 올 블랙으로 입으신 걸 보고 살짝 실망했어요.(웃음)

(웃음) 어느 날 오렌지색 차에 오렌지색 옷을 입고 탄 적이 있어요. 근데 누가 그걸 또 사진 찍어줬는데 좀 그렇다 해서 많이 자제하고 있습니다.

준호 님의 최근 오렌지색은 무엇인가요?

오렌지색 접시와 오렌지색 책과 오렌지색 케이스.

특별한 건 없는데 에어팟 프로 케이스가 오렌지색입니다.

일상의실천을 시작했을 때의 권준호와 10년이 지난 지금의 권준호는 많이 다른가요?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중요할 것 같아요.

10년 후의 권준호는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나이 들고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장식이 사라지고 정수만 남아서 추상화 같은 작업으로 귀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일상의실천에 직원분들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디렉팅을 해야 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작업을 손에 잡고 있는, 현장성이 있는 디자이너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운동이 지속되지 않고 나아가 실천이 되지 않으면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없는 순환 고리인 거죠. 실천이 쌓이면 운동이 되고, 운동이 되려면 실천이 지속돼야 하는 고리.”

『안팎』 13호
권준호와 이야기하는 영혼을 잃지 않으면서 일하기
https://anpakk.kr/conversations/13

  • 안: 이주화, 한누리
  • 팎: 권준호
  • 글자색: darkorange
  • 배경색: purple
  • 발행일: 2024년 3월 6일
  • 최종 수정일: 2024년 3월 6일
  • 발행처: 안그라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