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과 이야기하는
첫눈에 반하는 순간

7호

들어가며

평생의 짝사랑을 만난 적이 있나요? 우연히 만난 대상이 때로는 내 삶을 통째로 바꾸기도, 그 자체로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대상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평소와 다르게 눈이 커지고 말이 빨라지고 얼굴이 상기되기도 하죠. 어떨 때는 꿈에조차 나와 우리를 괴롭힙니다. 정말로 좋아한다는 마음이 우리를 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져본 마음들을 떠올려 보며, 언제 어디에서 그들이 찾아왔는지 되짚어 봅니다.

『안팎』 7호에서는 일상생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풀어내는 기계비평가 이영준과 함께 ‘첫눈에 반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영준

이영준은 기계비평가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다. 인간보다 기계를 더 사랑하는 그는 정교하고 육중한 기계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자 업이다. 일상생활 주변에 있는 재봉틀에서부터 첨단 제트엔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구조와 재료로 돼 있으면서 뭔가 작동하는 물건에는 다 관심이 많다. 원래 사진 비평가였던 그는 기계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스스로 설명해보고자 기계비평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 결과물로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2006), 『페가서스 10000마일』 (2012), 『조춘만의 중공업』 (공저, 2014), 『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2016),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공저, 2017),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2017) 같은 저서를 썼다. 또한 사진 비평에 대한 책(『비평의 눈초리』, 2008)과 이미지 비평에 대한 책(『이미지 비평의 광명세상』, 2012)도 썼다.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1999), 『서양식 공간예절』(2007), 『xyZ City』(2010), 2010 서울사진축제, 『김한용—소비자의 탄생』(2011), 『우주생활』(2015)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반갑습니다. 저희 대화에 어울릴 만한 배경음악을 고른다면 어떤 곡이 좋을까요?

좋아하는 곡 중에 인터뷰랑 듣기 좋을 만한 곡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전위적인 음악도 괜찮다면 이 노래가 좋겠네요.

기계비평이란 무엇인가요?

기계의 메커니즘에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용수철을 의미하는 스프링을 예시로 들어볼게요. 영어에서 스프링(spring)이라는 말은 봄을 뜻하죠. 샘도 영어로 스프링입니다. 이 세 가지 동음이의어엔 공통점이 있어요. ‘솟아오른다’. 용수철은 솟아오르고, 봄에 만물은 땅에서 솟아오르고, 샘에서는 물이 솟아오르죠.

요즘은 스프링이 좋아져서 탄성이 유지되는데 제가 어렸을 때 모나미 볼펜은 쓰다 보면 탄성이 약해져서 뻑뻑해졌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스프링을 연구한 거예요. 굉장히 하찮은 물건이지만 아무 쇠로나 스프링을 못 만든단 말이죠. 연철은 탄성이 없어서 강철로 만들어요.

볼펜 속 스프링

이야기를 하다 보면 흔히 강철의 ‘강’이 강할 강(强)인 줄 알지만 사실 아닙니다. 포항 제철소에 가면 제련을 거쳐 쇠를 만드는 과정이 있는데, 단련된 이 쇠가 강철 강(鋼)이에요. 연철의 ‘연’도 연할 연(軟)인 줄 알지만 납 연(鉛)을 쓰죠. 이런 식으로 스프링 하나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엉뚱한 이야기나 상상력을 펼치다 보면 신화적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지만, 그보다 사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압축하려 해요. 왜냐하면 요즘 철학 분야에서 신유물론을 논의하면서 사람들이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사실 사물은 옛날부터 사람 사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옛날부터 사물 자체에 굉장히 많은 특성과 이야기가 있어서 그것을 파헤치자고 생각해 왔어요. 그리고 기계비평은 기계 사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존재는 무엇이길래 이것과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라고 질문하며 존재론적 이야기를 펼쳐내는 겁니다.

영준 님이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처음 경험한 기계에 대해 알려주세요.

스스로 처음 경험한 건 모형 비행기 엔진 콕스 049(Cox 0.49)예요. 구조는 단순하지만 버스나 자동차의 엔진과 똑같아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놀면서 처음 접했어요. 우리가 타는 차의 엔진은 공기를 흡입해서 압축하고, 폭발시켜서 배출하는 4사이클(four-cycle)로 구성돼 있어요. 4행정 엔진(four-stroke engine)이라고도 하는데, 하여튼 모형 비행기 엔진은 2사이클이에요.

콕스 049 엔진(이영준 개인 소장)

자동차와 달리 그리 복잡한 엔진이 아니라서 연료 분사 장치가 따로 없어요. 너무 단순한 게 피스톤이 올라갈 때 공기를 빨아올리고 기화된 연료가 피스톤의 틈 사이로 빨려서 같이 올라가죠. 그러니까 공기와 연료가 같이 빨려 올라가요. 그러면 밸브가 열리면서 공기가 들어오고 폭발한 다음에 배기 밸브가 열리면 그때 빠져나가요. 이 엔진 연료의 주성분은 벤젠, 메탄올, 피마자유인데 여기서 피마자유가 윤활유 역할을 해요. 이 연료가 타면서 배기가스가 나오는데 그 냄새가 참 독특했던 기억이 나요. 아직도 친구들과 가끔 만나면 이 애기를 하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냄새와 다른 냄새가 났어요.

생생한 기억은 고유한 냄새가 있는 것 같아요.

냄새가 상기하는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죠.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합니다. 기억 나는 것 중 묘했던 게, 여기 홈에 맞는 전용 공구를 팔아요. 분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심심해서 분해해 봤고 또 쉬웠는데 다시 맞춰보니까 제 성능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마 공장에서 조립할 때 나름대로 정교한 기준을 따라서 조립했던 거겠죠. 초등학생이었던 제 수준으로는 그대로 다시 조립할 순 없었어요. 이렇듯 테크놀로지의 기본을 알려준 기계는 콕스 049 엔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전에 저희 외갓집이 수원 세류동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철도 건널목이 있었어요. 외할머니 밭일 하시는 걸 보고 있으면 기차가 막 지나갔죠. 그때만 해도 증기기관차가 있었어요. 맨날 건널목에 매달려서 기차 지나가는 풍경을 보곤 했는데, 그게 아마 처음 경험한 기계인 것 같아요. 그 건널목을 다시 찾고 싶어서 가봤는데 완전히 바뀌었더라고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차는 구경만 했고 실제로 제가 손을 대서 만져본 처음 기계는 모형 비행기 엔진이에요.

수원시 세류동에 있던 수인선 철도

식물학을 전공하다 사진으로, 사진을 공부하다 2005년 인천항에서 커다란 배들을 본 후로는 기계비평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셨죠. 각각의 과정들은 어떻게 연결되며 관계하나요?

그때는 산을 좋아해서 식물학과에 가면 산은 많이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리산이나 설악산은 혼자 처음 가기에 위험부담이 높은 곳인데 다행히 과에 산을 잘 타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그 덕분에 지리산, 설악산에 생전 처음 가봤죠.

그러다가 대학원을 미학과로 진학했고 석사 논문 「발터 벤야민 후기 예술론 연구 : 예술의 기능변환 개념을 중심으로」(1986)를 썼어요. 그때만 해도 카메라에 필름을 넣어서 찍는 사진이란 첨단 매체였어요. 디지털 매체는 거의 없었죠. PC도 나오기 전이니까 직접 접할 수 있는 첨단 매체는 카메라, 그다음에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쓰는 녹음기, 그다음에 비디오였어요. VHS 비디오는 아직 안 나왔을 때였어요.

아무튼 그때 사진은 첨단 매체라서 관심이 있었어요. 디지털 사진이 약 90년대 말에 등장하는데, 나오기 15년 전에는 사진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없어서 사진 비평을 시작해 보자고 했죠. 그렇게 시작은 했지만 많이 하진 않았고, 지금도 사진 비평을 쓰긴 쓰지만 개인적인 친분 외의 요청은 다 거절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사진비평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한 건 2010년 정도까지였던 것 같아요.

기계 비평은 어릴 적 초등학교도 가기 전 대여섯 살 때 외갓집 건널목에서 본 기차, 그다음에 열한두 살 때 만진 엔진, 그리고 인천항에서 본 커다란 배들⋯ 여러 단계를 거치며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관찰하고 비평한 기계 중 영준 님을 가장 흥분시킨 것은 무엇이었나요? 언젠가 꼭 직접 보고 싶은 기계가 있나요?

제 평생 짝사랑은 디젤기관차입니다. 디젤기관차를 실제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마어마한 매연을 뿜어서 지금은 퇴출 단계에 있어요. 훨씬 일찍 퇴출될 뻔했지만 디젤기관차의 장점이 하나 있어요.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전기가 끊겨도 기차는 다녀야 하잖아요. 우리나라 철도 대부분은 전철화되어 있는데 디젤은 전기와 관계없이 다닐 수 있으니까 몇 대는 남겨두고 있지만 앞으로 그것도 없어질 거예요.

나한정역의 7551호 디젤 기관차 (퇴역)

제 평생의 짝사랑 디젤기관차에도 특정한 모델이 있어요. 철도 매니아들은 그냥 특대형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모델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도 무궁화호를 끌고 있지만 이제 점점 없어지겠죠. 정식 명칭은 ‘GMC EMD GT26CW’.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하는데, 고등학생 때 본 신문 하단에 이 기차의 광고가 딱 실린 거예요. 그때 본 순간 이 모델 이름을 바로 외웠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기관차라서 그냥 그 순간 외워버렸어요. GMC는 General Motors Company, EMD는 Electro-Motive Division (현재는 Electro-Motive Diesel), GT26은 모델 넘버입니다. 이 기관차가 저를 정말 흥분시켜요. 이제는 폐차하고 다 뜯어내서 그 고철을 팔거든요. 세워둘 데도 없지만 그 고철을 어떻게든 얻는 게 제 꿈이에요.

요즘 저를 흥분시키는 건 선박이에요. 기차는 타고 갈 때마다 볼 수 있으니까 좋은데 선박은 볼 수 있는 항구도시가 가깝지 않잖아요. 가끔 선박을 보러 인천에 가는데 우리나라는 선박을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항만 시설은 대부분 보안 구역이라서 사진도 못 찍게 하고요. 여수에서는 선박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걸어 다니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와서 여기는 걸어 다니는 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보안 구역이 아니라 그냥 도로인데도 말이에요. 물어보니까 여기엔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제가 특이한 경우래요. 이런 점에서 서양이 부럽죠. 로테르담 항만이나 앤트워프 항만 같은 경우엔 홈페이지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이 표시된 항만 지도가 올라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사진 찍었다 하면 바로 문제가 되는데 그런 점이 좀 아쉽습니다.

그럼, 로켓엔진은 어때요?

그것도 관심 있는데, 와, 그건 정말 접근하기 어려워요. 나로우주센터에 가서 한 번 보긴 봤는데 사진은 절대 못 찍게 하더라고요. 로켓엔진이 가장 접근하기 힘들어요. 반면에 제트엔진은 자주 볼 수 있어요. 외국에 여행을 가도 제트엔진을 단 비행기를 타고 가고요. 그런데 우리가 로켓엔진을 단 비행체를 탈 확률은 앞으로 없을 거예요. 우주여행이 가능해진다고는 하지만 한 회에 몇 억 원이 들 텐데, 아무리 가격이 하락해도 비싼 수준이겠죠.

로켓엔진 RS-68 연소 시험 (NASA 스테니스우주센터)

로켓엔진을 테스트하는 방도 있었는데, 그 방에 있는 엔진이 성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트엔진은 수평으로 배치하는 반면에 로켓엔진은 수직으로 배치하니까 그 모습이 꼭 불상 같더라고요. 그리고 엄청난 고온과 고속을 견뎌야 하는 부품들의 복잡도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로켓엔진도 제트엔진의 연료와 같은 케로신을 사용해요. 쉽게 말하면 등유죠. 테스트를 마친 방에 들어갔는데, 케로신이 방출되면서 벽 사방에 튀어 있었고 냄새를 맡아보니 익숙한 등유 냄새가 났어요.

사진 찍기 좋은 대상을 영어로 포토제닉(photogenic)하다고 하는데, 로켓엔진이 정말 포토제닉해요. 하지만 보안이 아주 까다로워서 찍을 순 없어요. 올해 누리호가 발사됐을 때 그때 그 사람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생했을 텐데 발사가 성공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좋아하는 대상을 소유하고 싶어 하곤 합니다. 영준 님도 소유하고 싶은 기계가 있나요?

기관차요. 하지만 비싸기도 하고 둘 곳도 없죠.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테크놀로지는 사람을 초월적 경지로 이끌지만,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사람을 도로 좁은 틀에 가둬버린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죠. “사람과 테크놀로지가 맺는 관계를 바꿔야 한다.” 당신은 지금 테크놀로지와 어느 정도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나요?

요즘 제가 플라스틱에 대한 강의하고 있어서 플라스틱을 예로 들어볼게요. 플라스틱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사용하는 물건을 생각합니다. 손으로 집어서 버릴 수 있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요새 절대로 버릴 수 없는 플라스틱이라든가 플라스틱 없이 살기라든가 이런 주제의 책이 많아요. 문제가 있는 플라스틱은 나무로 교체하면 되겠죠. 하지만 나무 쟁반이 별다른 가공 없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못해도 우레탄 코팅 같은 것을 해야 해요.

천연 재료도 있지만 비쌉니다. 옻칠 쟁반과 다이소 쟁반의 값은 10배 이상 차이 날 거예요. 문제는 쟁반이 한 개만 필요한 게 아니란 거죠. 예를 들어 학교에서 책상을 원목으로 설정했을 경우 가격이 1,000원씩 차이 난다고 해봅시다. 책상을 1,000개 이상 마련한다고 하면 적어도 10억 원의 가격 차이가 나요.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그다음으로 없앨 수 없는 플라스틱은 전깃줄 피복입니다. 다른 대체재가 있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땐 면으로 된 피복이었는데, 면이 더 비싸고 결정적으로 젖으면 절연이 안 돼요.

그래서 플라스틱 절연체는 현재 곳곳에 깔려 있지만 언젠가 대체 방법이 연구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천연 재료는 없어요. 조금 전 말했듯이 코팅이나 MDF 같은 것은 접착제가 대부분 우레탄 계열이에요. 천연 재료가 있어도 값이 뛰기 때문에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는 거죠. 나무도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산에서 베어 와야 하는데, 이 또한 좋다고 할 수 없잖아요. MDF 같은 경우는 태백산이나 덕유산에서 베어 온 나무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의 나무일 텐데, 그곳엔 숲이 아니라 나무 농장이 따로 있어요. 같은 나무만 쭉 심어져 있는데 그것도 좋지 않아요. 왜냐하면 생태계의 핵심은 종 다양성이거든요. 하지만 필리핀에 가면 한도 끝도 없는 파인애플 밭과 코코넛 밭을 볼 수 있어요.

델몬트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파인애플 농장

그래서 테크놀로지와 사람의 관계는 실존적입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 존재와 아주 밀착해 있기 때문에 간단히 빼내서 버릴 수 있는 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플라스틱을 포기한다는 건 전기를 포기하는 거고, 전기를 포기한다는 건 현대적인 삶을 포기하는 겁니다. 물론 살 수는 있겠으나 누군가에게 핸드폰 전화번호를 줄 수 없고 컴퓨터로 온라인 계약을 할 수 없고 단톡방도 없으니 관계 유지도 어려워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꾸만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예를 들어 아이패드가 필요한데 굳이 안 사는 것처럼요.

선택의 폭이라는 것은 정말 좁죠. 예를 들어 밀가루의 90%는 수입산이거든요. 자급이 거의 없어요. 국산 밀가루만 먹을 수도 있겠지만 훨씬 비쌉니다. 그래서 선택의 길이 넓게 있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상당히 좁아요. 플라스틱을 전혀 쓰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현대적 삶을 포기하고 산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텐데, 옷도 전부 플라스틱이니 요즘 같은 날씨에 맨몸으로 산에서 있어야 해요. 그러면 벌레에 뜯겨서 한 시간도 못 있을 거예요. 그리고 먹을거리가 있을까요? 도토리를 주워 먹는다고 해봅시다. 아마 소화가 잘 안 돼서 먹기도 힘들겠지만 금방 배탈이 날 거예요. 재주 좋게 멧돼지를 잡았다고 해도 기생충이 득실거릴 텐데 어떻게 먹겠습니까. 버섯 같은 건 더 위험할 거고요. 그래서 현대인은 자연에서 살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기계를 이길 순 없지만 기계도 사람을 전멸시킬 수 없다는 을 하셨어요.

사람과 기계는 공생 내지 협력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랑 사람이 달리기 시합을 하면 절대로 사람이 이길 수 없어요. 단순하게 보면 우리는 손톱깎이도 이길 수 없어요. 제가 손톱깎이 없이 손톱을 깨끗이 깎을 수 있을까요? 물어뜯으면 되지만, 된다고 해서 할 수 있을까요? 또 드릴 없이 나무에 깨끗하게 구멍을 뚫을 수 있을까요? 볼펜 없이 지워지지 않는 가느다란 선을 그을 수 있을까요? 인간은 이미 기계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준 지 오래입니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기계와 인간이 공생하기 위해서 인간이 지켜야 하는 규칙은 뭐가 있을까요?

우선 난폭 운전하지 말고 음주 운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창의성이라고도 말하는데, 그게 과연 창의성인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매뉴얼대로 해야겠죠. 그런데 저도 그렇지만 대체로 한국 사람들은 매뉴얼을 잘 안 읽어요. 충무로에 가면 인쇄소가 많은데, 인쇄소 출력기마다 드라이버를 하나씩 꽂길래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출력기 카운터가 있는데, 이게 리셋되면 골치 아프대요. 그래서 그걸 끄기 위해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는데 이런 내용은 매뉴얼에 없을 거 아니에요. 유심히 살펴보면 한국 사람은 창의적인 것 같기도 해요.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가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니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재난 대비 매뉴얼 있네 없네 말이 많았잖아요. 매뉴얼은 지켜야 해요.

한편, 영준 님의 비평에서 이미지를 빼놓을 순 없습니다. 영준 님과 이미지는 어떤 관계인가요?

이영준, 『이미지 비평: 인공위성 사진에서 깻잎머리 스타일까지』(눈빛, 2008)

저는 이미지에 항상 예민해요. 저는 길을 걷던 산을 타건 어떤 이미지도 그냥 넘기지를 않거든요. 그러한 이미지들에 대해 비평을 모은 것이 『이미지 비평: 깻잎머리에서 인공위성까지』(눈빛, 2008)라는 책이에요. 제게는 모든 이미지가 인상적입니다. 구름이 끼면 구름이 아름답고, 구름이 안 끼고 해가 쨍쨍하면 하늘이 파래서 아름답죠. 눈앞을 그냥 지나치는 이미지가 없고 이미지에 대한 기억력이 좋은 편이에요.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나요?

미국의 윈스턴 링크(O. Winston Link)는 특이하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진가예요. 이분은 특이하게 철도만 촬영하는데 그것도 밤에만 찍어요. 정말 이상한 사람이죠. 낮에는 해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떠 있지 않아서 힘들더라도 밤에만 찍었다고 합니다.

윈스턴 링크, 「Hotshot, Eastbound, Iaeger, West Virginia」(1956)

이 사진은 1950년대에 찍은 사진인데 결정적으로 당시에 존재했던 세 가지 다른 교통수단을 보여줘요.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철도, 그 당시에 가장 지배적이었던 교통수단인 승용차, 그리고 아직 보편화되기 전인 제트기가 한 숏에 담겼죠. 또 자동차극장이라는 당시에 새로 등장한 기계적 생활의 형태가 보여요.

이 분은 정말 별별 방법을 다 써가며 사진을 찍었어요. 만약 기차가 여섯 칸이면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칸은 20미터이기 때문에 여섯 칸에 해당하는 120미터짜리 조명을 전부 설치하는 식이었어요. 요즘은 무선 조명이 있지만 50년대엔 그런 게 없었단 말이죠. 그러면 전깃줄을 깔아야 하는데, 기찻길 위에 깔면 줄이 잘리니까 밑으로 깔면서 어떻게든 했을 거예요. 아마 그의 보조 작가가 회고록을 썼으면 정말 재밌었을 것 같아요. ‘나는 어떻게 윈스턴 링크에게 학대당했나.’라면서요.

전민조, 「압구정동」(1978)

한국에도 전민조 선생님이 계세요.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활동하셨는데 80년도에 찍은 압구정동 사진이 재미있어요. 현대화되는 압구정동과 농촌의 압구정동이 공존하는데 어딘지 유머러스하면서 시대적인 상황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서 참 좋아해요.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은 무엇인가요?

무예도보통지의 한 장면

어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가서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봤어요. 사진은 책에 있던 도판인데, 이것만 봐도 조선시대에 무예가 꽤 발달했음을 알 수 있어요. 전 말을 타고서 쌍칼을 드는 건 전 처음 봤거든요. 이런 모습으로 실제 전쟁에 나갔다는 거잖아요. 심지어 옆에 화살통도 차고 있는 것 같고. 그러니까 이 사람, 엄청난 도사인 거죠. 사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만만치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자세들도 다 괜히 대단한 게 아닌 거 같고요.

오산 공군기지 정문

여기는 오산 공군기지인데 기지 정문에 제트기가 있더라고요.

애기살(편전)

또 최근에 「최종병기 활」에 나왔던 화살인데, 애기살을 샀어요. 아주 짧은 화살인데 쏘면 사람 정도는 간단히 관통하는 화살이에요. 우리나라에 만드는 분이 따로 계신데 그분이 직접 판매하셔서 한 개에 3만 원 주고 샀어요. 놀라운 점은 이 애기살이 400미터를 날아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짧아서 그냥 쏘는 게 아니라 통아라는 대나무 통에 받쳐서 쏴야 해요. 재미있는 건 상대방은 통아가 없으니 적의 애기살을 주워도 쏠 수가 없어요. 임진왜란 때 이걸 사용했다고 하는데 아마 조총보다 살상력이 높았을 겁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도 총의 위력이 약해 총에 맞아 즉사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보다도 치료를 받지 못해서 상처가 썩어서 죽었다고 해요. 임진왜란은 그전에 일어났으니 조총의 위력이 약한 때였을 거예요. 하지만 총은 일단 저격 소리가 크니까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줬을 테고, 또 당시엔 연기도 많이 났어요. 하지만 애기살만큼 멀리 날아가지는 못했을 거예요. 문제는 애기살을 배우기 위해선 평생이 걸리고 총은 5분만에 배울 수 있다는 큰 차이점입니다.

이렇게 저는 보는 것들이 전부 재밌고, 지루할 틈이 없어요. 인생에서 모든 게 흥미롭고 모든 이미지가 재밌어요. 이건 또 얼마 전에 핸드폰으로 슈퍼문을 찍었어요. 저는 애써 흥분을 감추려 했는데 SNS나 뉴스에서는 슈퍼문을 봤다고 난리더라고요.

왜 애써 흥분을 감추려 하셨어요?

남들 따라하기 싫어서 그저 초연한 척했습니다. 평론가도 예술가 못지않게 개성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비평은 왜 어렵게만 느껴질까요? 사람들은 다른 이의 ‘별점’을 중요하게 여기며 참고하지만, 그 열정이 비평문을 읽는 데까지 쉽사리 뻗치지 않는 것 같아요.

평론가분들 중 김복영 선생님은 홍익대학교 교수로 계셨던 분인데, 그분의 비평은 다소 추상적인 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잡지에서 그분의 글을 읽다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을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어떤 그림을 보고 ‘좋았어. 그냥 빨간색이 좀 예뻤어.’ 식의 비평 말고요. 인생에는 빨간색이 아주 많은데 이 그림의 빨간색과 토마토 케첩의 빨간색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줘야 해요.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쉽게.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줄 때도, 제가 글을 쓸 때도 기준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에게 과제를 보여드리고 이해하시면 어머니의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어요. 본가에서 독립해 자취하는 학생은 룸메이트의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고요. 어머니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어요.

비평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르고 써서 그렇습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모르고 쓰는 것, 다른 하나는 많은 비평가가 저지르는 실수인데 자기 감각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들과 저 사이의 차이점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저는 제 감각에서 출발해요. 반면에 많은 분들은 책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들뢰즈도 보고 아감벤도 보고 랑시에르도 보고, 머릿속이 그들로 가득 차 있어요. 저는 어떤 전시에 사용된 빨간색을 보고 토마토 케첩의 빨간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들은 들뢰즈가 이야기했던 빨간색에 관련한 구절을 떠올리죠. 많은 평론가가 전시회를 위한 비평을 쓰곤 하는데, 그 비평이 들뢰즈와 아감벤과 랑시에르로 가득 차면 결국 작가는 그들을 위해 작품을 만든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주 초보적인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평은 대상을 파고들어서 그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대상과 씨름해야 합니다. ‘이게 뭐지?’ ‘왜 저렇게 생긴 형태가 나를 매혹시키지?’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요. 그런데 ‘들뢰즈가 뭐라고 했더라?’ 등의 생각을 하면서 쓰는 글은 읽기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저는 사상가의 이름을 잘 언급하지 않아요. 잘 알지 못하기도 하고요.

질 들뢰즈

그렇다면 자기 감각을 벼릴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생리적으로 후각이 잘 발달하지 않았는데 생각하는 후각이나 마음의 후각은 굉장히 발달해서 요즘도 냄새에 대해 글을 쓰곤 합니다. 이런 유의 감각은 얼마든지 훈련이 가능하죠. 시각도 마찬가지고요. 일전에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요새 미술품 관련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은데 진행자가 미술품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미술관에 가려면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할까요? 만약 제가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면 공부할 필요 없고 그저 눈으로 보라고 말했을 거예요. 실제로 제 관람 방식도 이렇고요.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모든 걸 꼭 알아야 할 의무는 없잖아요.

리플릿에 있는 글도 솔직하지 않고 생동감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피카소 작품에 대한 전시 리플릿은 마치 피카소를 다 알고 있는 듯 소개하는데, 그건 허위라고 생각해요. 피카소는 이상한 사람이 맞고, 이상하라고 그런 그림을 그렸고, 그러면 피카소가 이상하다고 적는 게 맞아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게 아니니까요. 다시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그 진행자에게 이미 당신은 속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 감각을 토대로 바라본다면 자기 눈에 부딪히는 게 적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자기 감각을 믿는 방식이군요.

네, 직업병처럼 많이 느껴요. 그런데 이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분명히 마음속에는 복잡한 작용이 일어나겠죠. 보통 출근해서 일하다 보면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사람 속이라는 게 참 복잡해서, 이미 그 안에 많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면 억압된 상태에 있는 것과 같아요. 자기 속에 있는 생각과 감각을 충실히 끄집어내서 미술품과 접목시켰을 때 재미있으면 된 거고, 재미없으면 다음으로 넘어가면 되는 겁니다. 공부는 무언가를 새로이 알았는데 더 알고 싶을 때, 그때 하는 거예요. 미술품을 실제로 보고 난 뒤에 하는 거지, 보기 전에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겸재 정선, 「정선필 금강전도」(1734), 대한민국 국보 제217호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가 동양화에 대해서 질문할 때 전공자들이 다 대답해 주지 못한 의문이 있었어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면, 정말 신기한 게 금강산 높이가 1,500미터인데 「금강전도」는 산의 중간 높이에서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에요. 그러니까 헬리콥터가 있어야 가능한 시점인 겁니다. 이를 부감법 혹은 부감시라고 하는데, 제가 미술사 전공자분에게 겸재 정선의 시대에는 헬리콥터가 없었는데 어떻게 헬리콥터의 시점에서 그릴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그렇듯, 아마 교과서에 적힌 ‘부감시’ ‘겸재 정선’을 나란히 외우기만 했을 수 있겠죠.

피카소 전시를 보기 위해 그의 전기를 읽으라고도 하지만, 사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큐비즘’ ‘아방가르드’ 등의 단어는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쉬운 단어가 아니에요. 그럴 땐 자기 눈을 믿는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그림을 어떻게 보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말 자체가 엉터리인 겁니다. 결국은 자기 눈으로 보는 거예요. 이런 혼란은 전문가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꼭 알아야만 하는 ‘상식’인 것처럼 전문용어를 써가며 설명하니까 사람들 입장에선 겁이 나는 거죠.

예전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전시를 보러 갔는데 많은 사람이 한 그림 앞에서 5분이나 서 있더라고요. 5분은 꽤 긴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다들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줄 알고 봤더니, 어떤 앱에서 해당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어요. 설명이 달린 그림은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마음에 드는 그림은 앞에서 1시간을 서 있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1초만에 넘어갈 때도 있거든요. 결국 감각을 벼린다는 게 이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말을 쉽게 하는 법을 연구하시나요?

쉽고 명료하게 하려고 애쓰죠. 그런데 억지로 애쓰는 건 아니고, 버릇입니다. 저는 말할 때 더듬거나 ‘어⋯’라는 말을 거의 안 하는데, 아나운서처럼 발음도 똑바로 하려고 연습하고 노력해서 그런 거예요.

특히 학교에서 강의할 때는 천천히 말해야 하거든요. 각 학교 교수학습센터마다 교수들의 강의를 영상으로 촬영해서 분석해 줘요. 보면 너무 빨리 말하는 사람도 아주 많고 발음이 안 좋은 사람도 아주 많은데, 이런 걸 통해 신경을 쓰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익숙한 대상일수록 발음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의 경우엔 자기가 나온 고등학교 이름을 제일 발음 못 하더라고요. 너무 익숙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연습해야 합니다. 대학에 오면 국어는 배우지만 한국어로 자기 생각을 똑바로 전달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잘 배우지 않죠. 이대로 사회인이 되면 여전히 언어적으로 미성숙한 채로 살 수밖에 없어요.

영준 님은 ‘그냥’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네. ‘그냥’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수많은 샌드위치 종류가 있는데 서로 뭐가 다른가 계속 생각하면서 먹고 있어요.

『기계비평』(워크룸프레스, 2019)에서 기계가 너무 좋아 꿈도 꿨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이영준, 『기계비평』(워크룸프레스, 2019)

예전에는 돈만 내면 스케줄에 맞춰서 어떤 배든 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폐쇄된 환경인 배가 많이 위험한 곳이 되었어요. 배에 탄 한 사람만 코로나-19에 걸려도 탑승한 사람 전부가 걸릴 수 있어요. 그래서 배를 자주 못 타게 되니까 배 타는 꿈을 삼사일에 한 번씩 꾸곤 했어요. 너무 생생해서 배 갑판에 가면 설계도도 있었고 선원들과 이야기하기도 하는 이런 꿈을 거의 맨날 꿨죠. 그래서 어떻게든 배를 한 번 타보려고 별별 수단을 다 쓰고 있는데, 아직은 잘 안되네요.

어떤 배를 타고 싶나요?

화물선이면 어떤 것이든 좋아요. 여객선도 상관없는데 기계적인 속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객선은 보통 속을 잘 안 보여주지만 화물선은 다 개방해 주거든요. 그리고 사람마다 꾸는 악몽 패턴이 다 다르겠지만 최근 새로 개발된, 진짜 웃겼던 꿈은 아무리 검색을 해도 핸드폰이 안 찾아주는 꿈이었어요. 핸드폰이 악몽의 도구가 된 거죠. 그만큼 생활 속에 완전히 깊이 침투해 있다는 거겠죠.

“저는 보는 것들이 전부 재밌고, 지루할 틈이 없어요. 인생에서 모든 게 흥미롭고 모든 이미지가 재밌어요.”

『안팎』 7호
이영준과 이야기하는 첫눈에 반하는 순간
https://anpakk.kr/conversations/7

  • 안: 김세영, 김하영, 이주화
  • 팎: 이영준
  • 글자색: red
  • 배경색: yellow
  • 발행일: 2023년 11월 6일
  • 최종 수정일: 2023년 11월 6일
  • 발행처: 안그라픽스